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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쪽만 무너졌나

관상 동서 대조 ③ — 총론 완결

무너뜨린 것은 숫자였다

앞 편에서 봤듯이, 롬브로조의 체계를 끝낸 것은 도덕적 비판이 아니었다. 1913년 찰스 고링이 재소자 약 3,000명과 왕립공병대 병사들을 같은 방식으로 재서 의미 있는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그 체계는 스스로 내민 숫자에 걸려 넘어졌다.

여기서 흔히 생각을 멈춘다. "롬브로조는 틀렸고 과학이 그걸 밝혔다." 맞는 말이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다음이다.

롬브로조는 왜 그 숫자를 보았는가.

그는 사기꾼이 아니었다. 실제로 재소자들을 만났고, 실제로 자로 쟀고, 자기가 본 것을 기록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같은 자를 든 고링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같은 세계를 재고 다른 결과를 얻었다면, 자에 문제가 있었거나 재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관찰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람이 있다. 하버드 심리학 교수 후고 뮌스터베르크다. 그는 1908년 『증언대의 심리학』에서 법정 증언의 신뢰성을 실험으로 파헤쳤다.

그가 한 실험 하나를 보자. 피험자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잉크 얼룩을 보여주고 무엇으로 보이는지 물었다.

In some cases the subjects remained sceptical and declared that those spots did not represent anything, but were merely blots of ink. In the larger number the suggestion was effective, and a definite object was recognised. The list of answers for one picture begins: soldiers in a valley; grapes; a palace; river-bank; Japanese landscape; foliage; rabbit; woodland scene...

일부 피험자는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그 얼룩이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는 단순한 잉크 자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많은 수에게는 암시가 통했고, 뚜렷한 사물이 인식되었다. 한 그림에 대한 답변 목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 골짜기의 병사들, 포도, 궁전, 강둑, 일본 풍경, 나뭇잎, 토끼, 숲 풍경…

— 뮌스터베르크, 『증언대의 심리학』(1908), 「착각」 장

같은 얼룩에서 어떤 사람은 병사를, 어떤 사람은 토끼를 보았다. 얼룩에는 병사도 토끼도 없었다.

뮌스터베르크의 결론은 이렇다.

But, as we have insisted, it is never a question of pure sense perception. Associations, judgments, suggestions, penetrate into every one of our observations.

그러나 우리가 거듭 강조했듯이, 그것은 결코 순수한 감각 지각의 문제가 아니다. 연상·판단·암시가 우리의 모든 관찰에 스며든다.

찾으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찾는다. 롬브로조는 '범죄자의 얼굴'이 있다고 믿고 재소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얼룩에서 토끼를 본 사람들처럼.

같은 시기 범죄심리학의 매뉴얼을 쓴 한스 그로스도 같은 함정을 경고했다.

"From facts to ideas" — there lies our road; let us for once observe the facts of life without prejudice, without maxims built on preconceptions.

"사실에서 관념으로" — 우리의 길은 거기에 있다. 한 번쯤은 편견 없이, 선입견 위에 세운 격률 없이 삶의 사실을 관찰해보자.

— 그로스, 『범죄심리학』(1911)

롬브로조는 반대로 갔다. 관념에서 출발해 사실을 찾았다.

그렇다면 상법은 왜 무너지지 않았나

이제 불편한 질문을 마주할 차례다. 동양 상법도 관념에서 출발하지 않았는가? 왜 상법은 고링의 통계 같은 것을 만나지 않았는가?

답은 유쾌하지 않다. 상법은 그런 종류의 주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반증을 만나지 않았다.

앞서 확인했듯 상법 어디에도 "이런 귀를 가진 자의 28퍼센트가 무엇이다"라는 문장은 없다. 오관 조문은 조건을 나열하고 「乃為○○官成(이에 ○○관이 이루어진다)」로 끝난다. 그것은 예측이 아니라 서술이고, 분류가 아니라 읽기다.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이것은 상법이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반증되지 않는 주장은 검증되지도 않는다. 상법은 롬브로조보다 옳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같은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경기의 판정을 받지 않았을 뿐이다.

과학의 잣대로 재면 상법은 과학이 아니다. 그리고 상법은 과학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상법이 판별을 흉내 내는 순간, 롬브로조의 길로 들어선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배신한다." "이런 코는 사기꾼이다." 이런 문장이 나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해석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주장이 된다. 그리고 검증되면 롬브로조와 똑같이 무너진다. 무너지기 전까지 사람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더 나쁘다.

롬브로조의 진짜 죄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 틀린 학설은 흔하다. 그의 죄는 자기 확신을 사람을 가르는 잣대로 만든 것이었다. 그 잣대는 실제 재판에 쓰였고, 실제 사람들의 삶을 바꿨다.

동양 상법이 그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상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재단한 역사는 동아시아에도 있다. 다만 그것은 텍스트가 시킨 일이 아니라 사람이 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세 편에 걸쳐 확인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동양 상법은 얼굴의 다섯 부위를 관직으로 부르며 "이 관은 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를 물었다. 조건을 갖추면 이루어지고(成), 갖추지 못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가르는 언어가 아니라 상태를 서술하는 언어였다.

다윈은 얼굴의 움직임을 보며 "이 표정은 왜 생겼나"를 물었고, 인류가 하나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롬브로조는 얼굴의 생김새를 재며 "누가 범죄자로 태어났나"를 물었고, 숫자를 댔고, 그 숫자에 걸려 무너졌다.

세 질문 중 마지막 것만이 무너졌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사람을 가르려 한 질문이었다.

이 시리즈가 원전을 직접 읽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법을 판별표로 쓰지 않으려면, 상법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통행본의 요약이나 전언이 아니라, 명대 각본의 원문으로.

다음 편부터는 부위별로 들어간다. 눈부터 시작한다. 『신상전편』의 감찰관 조문이 요구한 '함장불로(含藏不露)'와, 다윈이 관찰한 눈물샘 주위의 근육 운동을 나란히 놓고 읽는다.


인용 원전

서양 - Hugo Münsterberg, On the Witness Stand: Essays on Psychology and Crime (1908), ch. "Illusions" — 하버드 심리학 교수, 법정심리학 창시서 - Hans Gross, Criminal Psychology: A Manual for Judges, Practitioners, and Students (English ed., 1911) - Charles Goring, The English Convict: A Statistical Study (London, 1913) - Cesare Lombroso, Criminal Man (English ed., 1911) — ⚠️ 폐기된 학설의 사료로만 인용한다

동양 - 『神相全編』 卷之一 — 하버드 옌칭도서관 소장 명(明) 각본 (drs:53262204)

이 시리즈에 대하여

『신상전편』·『마의상법』·『풍감상법』 등 명대 간행 원전과, 다윈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 초판)·롬브로조 『범죄인』을 나란히 놓고 읽는 8편 시리즈입니다. 원전은 모두 퍼블릭 도메인 판본을 직접 대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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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와 같은 원전 대조 방법으로 사주·명리 리포트를 만듭니다 → olo.house